레디메이드 인생 외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외 [채만식]일제강점기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채만식의 중 단편소설!채만식은 [세 길로]라는 짧은 단편이 1924년 12월 [조선문단]에 실리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25년 남짓한 기간에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태평천하], [탁류] 같은 장편소설을 포함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작품 창작을 해나간 과정이나 유형을 고려해 11편의 중단편소설을 가려 뽑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가 해설을 달았다.작품 중에서 [세 길로]와 [레디메이드 인생]은 등단하던 때부터 빛을 볼 때까지를 대표한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외국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들을 받아줄 수 없는 사회에 절망하게 되는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치숙]과 [소망]은 이러한 지식인들이 겪는 정신적 위기에 관련한 작품이다. [두 순정], [쑥국새], [용동댁의 경우]는 농촌소설 유형의 작품으로 사회가 병들면서 함께 병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집안에서 맺어준 결혼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을 거울삼아 여성의 운명에 깊이 숙고한 흔적을 볼 수 있다.[순공 있는 일요일]과 [민족의 죄인]은 채만식의 대일협력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대일협력 행위를 해방 후에 어떤 형태로든 반성하고자 했던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채만식은 자신이 삶에서 경험한 주관적인 것들을 객관화시켜 냉철하게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미스터 방]과 [논 이야기]는 해방 이후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의 변화를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여자의 정조가 그것을 잃었다고 자살을 하도록 그다지도 고귀한 것이라면 '이십 전에도 팔겠소' 하는 여자가 눈을 멀끔멀끔 뜨고 살아 있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또 정조를 '이십 전에도 팔겠소' 하는 여자가 있도록 그것이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이라면 그것을 한 번 빼앗긴 때문에 생명을 내버리는 여자가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이 두 여자가 모두 건전한 양심의 소유자라고 볼 수는 없다.그러나 그 가운데 나무라기로 들면 차라리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자살한 여자를 나무랄 것이지, '이십 전에 팔겠소' 하는 여자는 나무랄 수가 없다.(/ 본문 중에서)[민족의 죄인]은 자신의 대일협력 행위를 해방 후에 어떤 형태로든 성찰하고 반성하고자 했던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이 된 작가는 일제 말기의 자신을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로 규정한다. 이것은 그 자신이 생활의 논리에 밀려 응당 저항하고 비판했어야 할 일제 말기의 동원체제, 전쟁체제에 협력해버린 것을 반성하는 뜻이 담겨 있다.(/ 작품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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