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여자 [윤용호]~

마방여자 [윤용호]경마문학계 최고의 작가 윤용호의 신작 경마장 객석에서는 알 수 없는 운명의 냄새, 남녀의 불타는 욕망 속에 뭔가 있다!대학 휴학생인 하나우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일거리를 찾다 군대 선임의 소개로 과천 경마공원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는 꼭두새벽마다 말의 배설물을 치우고 짚풀을 갈면서 지내다가 경마 기수가 된 옛 친구 김모규를 만난다. 김모규는 체구가 작아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인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 후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새 인생길로 선택한 기수 일에서 크게 성공하여 손쉽게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 그러다 결국 꽃뱀에게 걸려 협박을 받기에 이른다.한편, 하나우를 마방에서 일하도록 주선한 군대 선임 최우영은 경마장 전속 수의사이다. 최우영은 가족에게 등을 떠밀려 여러 번 맞선을 보았으나 여자에게 흥미가 없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려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약물을 개발한다. 곧 상습적으로 경마의 승률을 조작하는 악덕마주에게 소속된 말들이 기적 같은 우승 직후 죽어나가기 시작한다.하나우는 그 와중에 전생에 자신이 말이었다고 믿는 신비한 여성 정엠마와 마주친다. ‘마방 여자’인 그녀는 말과 대화를 나누고 우승 경주마를 알아맞히는 초능력을 지녔다. 그는 돈 많고 능력 있는 이 여자에게 적의를 갖고 대한다. 헌데 여자의 반응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서 그는 내내 마음이 어지럽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말인 러브 마치는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 중이었다. 러브 마치는 참빛이라는 예쁜 암말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 하나우는 자신과 정엠마의 불투명한 관계를 이 두 말들에게서 발견하고 흥미롭게 여긴다. 마방의 조교사는 러브 마치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거세를 결정한다. 하나우는 스스로 의아할 정도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왜 경마장인가?경마장,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박이다. 무섭고 피해야 할 어떤 것이다. 그런데 도박이 무서운 이유는 그 스릴과 보상이 너무나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을 일시에 뒤집고 새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인 것이다. 사람은 희망 없이 살 수 없고, 그래서 항상 유혹에 빠진다. 이러한 유혹이 가장 극적으로 현실과 어우러져 날뛰는 곳이 경마장이다. 소설에서는 기수, 수의사, 마방지기, 조교사 등 경마장 내부의 풍경과 우리가 평소에는 알 수 없는 생활의 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약물주입 사건, 남녀 주인공들의 애정의 줄다리기, 신인스타 기수의 호색행각, 주인공 말의 거세와 숨막히는 질주가 펼쳐진다. “모규의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러브 마치의 목덜미에서는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맞추어 러브 마치의 콧김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추격해 온 서너 마리의 말들과 함께 우르르 뭉쳐서 결승선을 통과한다고 여기는 순간 러브 마치의 목이 위로 휙 치켜지는가 싶더니 앞으로 쑥 쏠렸다.”말과 돈, 여자와 남자, 생명과 운명…생경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원초적인 사랑의 미스테리재미있는 부분은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처럼 장면들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헬기 위의 카메라처럼 경마장을 조망하다가 갑자기 마방 속 사건으로 파고드는가 하더니 어느 새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렌즈를 들이대어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면세계까지도 상세하게 보여 준다. 경마장의 승부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도박만 생각나는 경마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얼마나 말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말과 경마로 이어진 인물들이 얼마나 현란하고 노골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포인트이다. 수의사, 조교사, 기수, 마방지기인 그들은 겉으로는 상대의 속을 궁금해하지 않은 채 말(馬)로만 삶을 나누지만, 누구보다도 서로의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고 있다. 거절당한, 혹은 그럴 것이 두려워 숨기거나 딴소리할 뿐 그렇게 강렬한 이끌림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숨기고 산다. 가끔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한다. 그러다 보니 태초의 생명력은 정해진 삶의 방식에 짓눌려 김밥 옆구리 터지듯 비뚜름하게 새어나온다. 살아내기 위해 욕망을 버리면서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도 도매금으로 거세당한 인물들을 대신해서 말들은 치열하게 트랙을 달린다. 욕망은 해방을 꿈꿀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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